당신이 올 한해 로그인 비밀번호를 90번이나 잘못 입력했다면 어떠실 것 같나요? 마음 속으로 '나는 바보인가'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CU 편의점은 2023년 동안 로그인 비밀번호를 총 128번 틀린 한 고객에게 "과거 자신과의 싸움상"을 수여했습니다. 그리고 건강에 아주 좋은 아몬드 교환권 10개를 부상으로 증정했죠.

이미 발생한 일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장점을 발견하는 일, 멋지지 않나요? 내 경험을 어떤 면으로 보는 지에 따라서 내 삶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연말 회고 상반기 버전은 수상 DIY로 렛츠기릿 해보자구요~!

홍콩에서 교환 학생을 시작하게 된 저는 모든 것이 디즈니의 한 동화처럼 아름다울 줄 알았습니다. 홍콩 사람들이 한국인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케이팝, 케이드라마 얘기로 친구를 쉽게 사귈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대학교에는 홍콩 로컬보다는 외국 친구들이 더 많았고, 음악과 콘텐츠는 개인 취향의 문제여서 공통의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친구들의 빠른 대화 속도, 독특한 엑센트로 인해 깊이 있는 대화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마음을 바꿨습니다. 얕고 넓은 인간관계를 선호하는 사람, 친구를 많~~이 알아두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것이죠. 그래서 학교에서 일어나는 각종 이벤트에 참석해 인.따 (인스타 따기)를 실천하며, 친구가 하는 게 뭐든 같이 해보자는 심정으로 친구 따라 강남 A, 강남 B, 강남 C까지도 가기 시작했습니다.

- 외국인 12명 데리고 한식당 가기 

- 친구 따라서 martial arts (무술) 레슨 듣기 

- ifc 몰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들 총 9명과 마카오 가기 

- 사진 찍는 친구 따라서 nn만원짜리 필름 카메라 사기 

- 왓츠앱을 통해 모인, 초면의 친구들 3명과 디즈니랜드 가기

- 한번 만난 로컬 친구를 투어리스트로 섭외해 유학생4+로컬1 구성으로 등산 다녀오기 

후...🔥 돌이켜보면 불꽃 E 같은 행보였네요.

영어를 잘 못해 같이 어울리기 싫은 사람이 될까 두려워서, 먼저 초대하는 사람이 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또, 당시에는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 잘 몰랐기 때문에, 상대방의 취미를 최대한 맞춰주려고 했나 봅니다. 

이달의 키워드: Settle Down

이달의 음악: New Jeans - OMG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는 제목의 드라마가 있습니다. 하지만 도망칠 수가 없다면요💀 2월은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많았지만 도망칠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존버한 달이었습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친구가 많은 것을 안 좋게 보는 질투의 시선이 증가했고,

친구 생일파티에서 술부심을 부리다 블랙아웃이 된 적도 있고, 

제게 데이트 신청을 한 짱친에게 돌연 Rejection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학업에 있어서는...

호스트를 맡게 된 발표세션에 단 한 명의 신청자만 있다는 소식을 듣고 현타가 왔고,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실시간으로 토론하고 발표해야하는 일도 쉽지 않았고,

팀플에 도움이 되고 싶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의도치 않게 버스를 타버리게 된 제 자신을 보며 괴로웠습니다. 

그래도 애써 괜찮은 척..^^ 하며 얼굴에 철판을 깔고 친구들과 어울렸고,

너무 쪽팔려 미치버릴 것 같은 순간에는 아예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기도 시작했습니다. 

당시 제 갤러리 속에서 "버티고 있다는 건 성장한다는 의미이다" 문구가 적힌 사진이 저장되어 있더군요.

이달의 키워드: FOMO

이달의 음악: Big Naughty - Vancouver

3월은 스트레스 해소를 빌미로 문화 생활비를 가장 많이 쏟아부은 달이었습니다.

교환에서 만난 친구들과 일주일동안 일본여행에 다녀오기도 했고, 홍콩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치파오를 입고 <화양연화> 속 장만옥을 따라해보기도 했습니다. (치파오가 너무 좋아서 스스로 국적이 의심될 정도였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닮은꼴인 홍콩국제영화제(HKIFF)에도 다녀왔습니다. 상영 후 무대인사에 참석한 감독이 웬만한 아이돌 못지않게 잘생겨서 놀랐는데, 알고보니 그 감독이 가진동 (대만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의 남주) 이라는 사실에 더 놀랐습니다. 

홍콩에서는 3월을 Month of Art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전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홍콩 아트바젤에 다녀온 일은 제 취미 찾기에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림 앞에 서면 한없이 압도되는 느낌이 좋았고, 작품마다 느껴지는 감정들이 달라지는 것이 무척 신기했습니다. 특히 복잡한 생각들은 작품 앞에서 비워내고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어, 전시장을 돌아다니는 4시간이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다시 홍콩에 갈 수 있다면, 3월에 가고 싶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다음에 홍콩에 갈 기회가 있자면, 더 패셔너블하게 옷을 차려 입고 가서 네트워킹을 해보고 싶습니다.🤭

이달의 키워드: Artsy

이달의 음악: Stacey Ryan - Fall in Love Alone

그리고 그 둘이 여자와 남자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애로 발전한 것 같습니다. (정은 이렇게나 무섭습니다...) 사내연애는 아무리 비밀에 부처도 복사기 빼고 모두가 다 안다는 말처럼, 친구들이 제가 말을 하지 않아도 연애 중인 것을 알고 있어 놀랐습니다. 

이달의 키워드: amour

5월은 학기가 마무리되는 시기이자 홍콩에서 보내는 마지막 달입니다.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얼마 안 남지 않자, 저는 못 만난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하루에 최대 4개의 일정을 소화하며 보고 싶었던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낮부터 밤까지 친구들과 놀기 위해 새벽에 도서관에 가서 과제를 하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출국을 하는 그날까지도 빼놓치 않고 데이트를 열심히 했습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라도 한번 더 만나고 싶었던 친구들의 매력포인트를 기록해봅니다

- 여성 파일럿이 되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은 일본 친구의 진심

- 자신의 체력 밸런스를 잘 조절할 줄 알았던 덴마크 친구의 여유

- 생각의 거리를 많이 던져준 중국계-미국인 친구의 철학적 사유 능력

- 뭐든 같이하자는 제안을 많이 해준 중국계-스웨덴 친구의 사교능력

-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스페인계 독일 친구의 도전정신과 호기심

- 적극적으로 홍콩문화를 소개해주며 내 마음까지 살펴준 로컬 친구의 다정함 

이달의 키워드: FAREWELL

이달의 음악: Day 6 - 행복했던 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