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회사에서 운 좋게 일을 하게 된 여름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집중해왔던 마케팅과는 달리 광고는 분명 다른 영역이라 쉽지 않았다. 마케팅은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판매를 높이는 것이 목적이라면, 광고는 브랜드의 호감도 / 제품 혹은 서비스의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목적인 만큼, 더 뾰족한 전략을 가지고 대중을 상대하는 캠페인을 만들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쓸모 있는" 인턴이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공부가 필요했다.

선배님께서 주신 제안서들을 읽으면서 다양한 캠페인 로직을 분석하기도 하고, 선배님들의 코멘트를 수첩에 적어가며 광고 새내기를 탈출하기 위해 노력했다. 돌이켜보면,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의 시간들을 어떻게하면 공격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했던 시기인 것 같다. 나의 부족한 면모를 들여다보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성장의 한 부분에 있다는 것이 뿌듯하기도 했고, 일에 몰입하면서 헤어짐에 대한 우울함과 잠시 멀어질 수 있어 좋았다.

광고를 공부한 지 몇 주가 지나자, 인턴으로서 얼마만큼 실전능력을 발휘해낼 수 있을지 스스로 궁금했던 8월이다. 그래서 직접 제안서를 기획하고, 멘토와 팀장님 앞에서 발표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형편없는 발표였다. 발표 스킬이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 느껴 부끄러웠지만, 나에게는 배우는 일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참고 피드백을 받기로 했다.

그리고 다른 팀 선배님들에게도 커피챗을 요청하면서 네트워킹 시간을 가졌다. 정말 두근거렸지만, "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사람보다 강하다"는 마인드셋으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나를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배우려는 사람'으로 봐주고, 많은 배움이 있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 회사 분들께 아직도 많이 감사하다.

3년 반만에 복학하여 오프라인 수업을 듣게된 9월...🏫 여유 있게 수업을 들으며 취준을 병행하는 막학기생들과 달리, HSK6급 취득과 일곱과목 수강을 동시에 헤쳐나가야 하는 현실이 힘들게 느껴졌다. 급수 획득도 성적 취득도 단 시간 내에 잘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스스로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사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는 법인데, 여기서도 첫 방에 모든 걸 다 잘해내고 싶어하는 내 욕심이 들어나는가보다🫠

입학할 때는 분명 외국어가 내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더 이상 언어를 잘한다고 느껴지지도, 중국어를 하고 싶은 의욕조차도 생기지 않았다. 게다가 홍콩과 광고회사라는 두 번의 새로운 환경에서 사람들과 교류하며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기에, 새로운 친구를 만날 체력이 없었다. 쉬고 싶지만 쉴 수 없는 답답함에 열심히 회피할 구석을 찾아다닌 달이랄까?

전혀 알아 들을 수 없는 원어민 수업에서 견뎌내야 하는 내 현실과 달리 내가 꿈꾸고 있는 이상은 너무나 컸다. 글로벌 마케터를 꿈꿀 수 있도록 주변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교환 친구들이 곁에 없다는 사실도 내 슬픔에 한몫을 더했다. 영화 동사서독에는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하여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라는 대사가 나온다. 추억은 추억 그대로 담아두는 것만으로 의미가 충분한데, 그때의 나는 이 추억들을 금방 잊어 버리게 될까 겁이 났었던 것 같다.

10월 중순에 중국어 시험을 본 뒤로는 스냅 사진, 프로필 등을 찍으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사진 찍히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 것일까? 사진은 내가 노력한 만큼 결과물이 정직하게 나오는 활동으로, 내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나는 타인에 대한 인정 욕구가 강하고, 남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outstanding 할 수 있는 환경을 직장 / 학회 / 멘토링 활동 등에서 찾아왔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일을 하고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성적이나 어학 실력으로 다른 친구들을 뛰어넘을 수도 없다. 가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 중에 나를 더 돋보일 수 있는 수단은 사진 뿐이었다. 사진을 통해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나를 표현할 수 있었다. 어떤 날은 프로페셔널한 모습으로, 어떤 날은 내가 생각하는 나다운 모습으로.

사실, 전 남자친구를 뛰어넘는 'finest ex'가 되고 싶어서 건강하고, 예뻐진 내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전시하고 싶은 마음도 존재했다. 

그러나 요즘은 고민이 많아진다. 미디어 속에서 나는 타인에게 나-중심적으로 보이는 건 아닐까? 다른 사람도 생각할 줄 알고, 내 자신 외의 다른 것도 인스타에 담아낼 줄 아는, 여유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11월에는 세미 취준의 일환으로 담배 회사에 지원했었다. 비흡연자가 담배 회사에 지원한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챌린징한 환경에서 빠르게 성장하기에 매우 적합한 기회라고 생각했었다. 흡연가인 지원자보다 하나라도 더 준비된 인재가 되고 싶어, 학교 앞 베이프샵과 집앞 편의점에서 직접 액상을 구매하며 난생 처음 담배를 피워보기도 했다. 그때 깨달았다. "ㅇ ㅏ 나는 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것을 시도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구나"

11월 말에는 중국 사회비판 작가 루쉰과 한국 사회비판 감독 봉준호의 작품을 비교하는 졸업논문을 썼다. 문학을 정말 싫어했기에 대학교 3학년때까지만 해도 절대로 루쉰 수업을 들을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이번 학기에 가장 재밌게 들은 것이 루쉰 문학수업이었다. 루쉰은 과거를 객관적으로 바라봄으로써  관습을 타파하는 것이 희망의 시작이라고 보았다. 마케팅에서 비즈니스 문제를 해결하는 일도 결국 기존의 관습을 깨야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과거의 소설가에게서 lesson을 얻는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12월에도 세미 취준은 계속되었다. 그 중 광고대행사 면접을 준비하면서, 광고인은 문제를 잘 정의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일반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는 일에 시간을 더 쏟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 75%만 쏟아도 솔루션은 자동으로 따라온다는 것이 신기했다.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Why를 깊이 있게 파고드는 힘이 있어야 한다. 나의 전반적인 취준 과정에서도 Why를 질문하는 순간이 많았다. 왜 이 일을 하고 싶은가? 왜 이 회사인가? 왜 나는 합격하지 못했는가? 왜 준비가 부족했는가?

돌이켜보면 절대적인 input이 부족했기 때문도 맞고, 성격 자체가 무언가를 사전에 꼼꼼히 계획하기보다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 추진력을 배로 내어 일을 하기 때문도 있었다.

전에는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지만 Why라는 질문을 통해 내 행동에 대한 이유, 내 마음, 성향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