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미술작품들만 해도 그러하다. 대부분의 유명한 그림은 누가 봐도 아름답다. (대부분의 사람이 봐도 아름답기 때문에 유명해진건지도 모르지만) 괜히 유명한 그림이 아름다운지 모르겠다며 트집을 잡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때도 있지만, 막상 그 그림앞에 서면, "그림이 예쁘긴 예쁘다."라는 말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너무 유명해서 모두가 작품을 알고있을 경우에도 모순적이게도 아우라를 잃게 되기도 한다. 이는 작품이 일상 곳곳에서 너무 자주 소비되면서 작품이 가지고있던 '아우라'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나에겐 클림트 '키스'가 그러한 작품이었다. 2009년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되었던 클림트 전시전에 엄마와 함께 갔었다. 당시 만 8세였던 나는 지금보다 훨씬 작은 키로 클림트의 그림을 올려다보며 '화려하고 요상하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일상 생활에서 잘 보이지 않는 색으로 그림이 덮혀있고, 그림 속 두 인물의 신체 형태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화려하고 요상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별 감흥 없이 보고 지나갔던 '키스'를 그린 작가 클림트의 다른 작품을 일 년뒤 예능 프로그램에서 마주치게 된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디트를 모티프로 '도전 달력모델'에서 사진을 찍은 유재석을 보며 나는 무의식적으로 구스타프 클림트 그림들에 대해 '웃기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클림트의 키스를 다이소 퍼즐에서도, 안경 닦기에서도, 노트 디자인으로도 일상생활에서 자주 마주쳤었고, 나는 항상 별 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2022년 클림트의 키스를 다시 실물로 마주하게 된다.
비포 선라이즈 영화 때문에 생겼던 비엔나에 대한 로망으로 떠났던 오스트리아 여행에서 다시 마주친 키스는 나에게 너무나도 강렬한 감정을 안겨줬다.
사랑하는 사람을 안고있었을때, 서로의 입을 맞췄을때 느꼈던 편안함, 따뜻함, 황홀함 그리고 반짝거림. 이 모든게 그림 하나로 나에게 전달되었다. 당시 교환학생을 하며 홍콩에서 만나게 되었던 애인이 있었는데, 이제 교환학기가 끝나면 어떻게 해야할지, 다시 볼 수는 있는건지 어지러운 상황에서 애인을 껴안고 있을때 느꼈던 감정을 갤러리에서 혼자 느끼고 있자니 감동적이면서도 마음이 많이 아렸다. 많은 연인들이 키스 그림 앞에서 입을 맞춘다. 혼자 우뚝 서서 그림 앞에서 입을 맞추고 있는 다른 연인들의 모습을 보며 사랑하는 마음이란 가장 보편적인 마음인것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렇게 키스에 대한 나의 감상은 오스트리아에서 키스를 보며 강한 감정을 느낀 뒤 바뀌게 되었다. 그림을 보며 느꼈던 그리움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모두 한번쯤은 느끼는 슬픈 감정들이 내가 클림트의 키스를 사랑하게 만들었다.
다시 못 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애인을 그 해 겨울 서울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반 년 만에 만나는 애인이 살짝 어색했던 공항에서의 만남이 아직도 기억난다. 애인이 서울에서 지냈던 겨울동안 운이 좋게 워커힐 호텔에서 진행됐던 "빛의 시네마: 클림트" 전시 티켓을 얻게 되었다. 연인을 떠올리게 했던 그림을 실물로는 아니지만 전시의 형태로 같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게 행복했다. 편안하게 전시장을 걸어다닐 수 있는 형태의 전시였기 때문에, 우리는 긴 시간동안 여유롭게 그림 안을 산책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비엔나 벨베데레 궁전에서 혼자 키스를 봤을때의 감상을 공유했고, 이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관계에 대한 내 속마음도 편안한 분위기에서 털어놓을 수 있었다. 약 9000km가 떨어진 거리에 사는 우리의 관계에 대한 내 불안감과 그럼에도 이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은 내 욕심과 막연한 그리움과 두려움 등을 털어놓자 한켠 마음이 후련했다.
다시 만난 키스 그림은 나의 가슴을 아려오게 만들기 보다는 사랑과 기쁨에 흠뻑 취하게 해줬다.
2023 겨울, 애인과 홍콩 이후 세 번째 만남때 비엔나에 일년 반 만에 다시 가게 된다. 크리스마스 연휴에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유명한 비엔나에, 친구를 만나러 떠난 1박 2일 여행이었다. 크리스마스 마켓을 보는 것 이외에는 무엇을 할까 생각해보다가 문득 클림트의 키스가 벨베데레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네 번째 만남때 나는 나와 애인의 관계에 대해 전보다 큰 안정감을 가지고 있었다. 안정감과 관계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가진 채 마주한 키스는..글쎄, 더이상 나에게 강렬한 감정을 안겨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가 평온하게 연인과 함께 키스 그림 앞에 서서 내가 혼자 비엔나에 왔을 때 봤던 다른 연인들처럼 입을 맞추고 있을 수 있는 사실에, 이 그림은 영원히 나와 내 연인에게 서로를 떠올릴 수 있는 그림이 되었다는 사실에, 앞으로 또 이 그림을 같이 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에, 그림 앞에서 미소짓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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