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를 읽기 전에 보면 좋을 영상. 플라톤 "향연"에 나오는 사랑의 기원에 대한 한 신화의 내용이다.
사랑을 찬양하는 소설과 시, 그림과 연극이 많다는 점은 나에게 항상 의문스럽게 느껴졌다. 사랑이 대체 뭐라고 그렇게들 찬양을 하는지. 사랑이라는 개념을 넓게 본다면 부모님과의 사랑, 친구와의 사랑 혹은 전인류적 사랑과 종을 뛰어 넘는 생명체끼리의 사랑으로 볼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에술작품들이 찬양하는 사랑은 성적인 의미가 담긴, 연애 감정의 농도가 짙은 사랑이었다.
영화 "헤드윅" 中
나는 연애감정의 사랑이 사랑의 종류 중 가장 가치가 없는 사랑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정의한 연애감정의 사랑은 성적인 긴장감, 즉 불편함이 포함된 사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연애감정의 사랑은 관계에 놓인 두 상대 모두가 항상 긴장 상태에 놓여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편한 상태로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다른 종류의 사랑 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연애 감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때는 구체적으로 설명할만한 이유나 계기가 없다고 생각했다. 연인들마다 자신들의 스토리나 상대를 좋아하는 이유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사실 이미 사랑하는 감정이 먼저 생긴 뒤 그 감정에 대한 자기합리화를 하기 위해 생겨난 것 같다고 느껴졌다. 나는 이유 없이 누군가를 좋아하는건 조금 멍청해 보이는 행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더욱 연애 감정으로서의 사랑이 보잘 것 없어보였다. 하지만 향연에 소개된 신화처럼 그저 서로 몸이 합쳐지길 원하는게 본능이라면? 나는 할 말이 없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싶어하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싶어 하는 것처럼, 원래는 두개의 몸이 붙어있었다는 우리의 조상들의 모습을 이상으로 쫓고 싶은 본능 때문에 사랑을 하는 거라면 나는 이 본능에 대해 보잘것 없어보인다는 평가를 내리지 않을 것 같다.
향연에 나오는 신화가 진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신화처럼 사람들이 말하고 싶은 바를 비유에 담아서 이야기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갈라진 상태를 불완전한 상태처럼 묘사하고, 원래 두 신체가 붙어있었던 완전한 상태와 비슷한 상태가 되기 위해 서로 사랑을 한다고 서술해 놓은 점에서 옛날부터 사람들은 사랑으로 사람이 뭉친다면 강해진다고 생각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Love and pain, Munch, 1895
검은 옷을 입은 남성이 붉은 머리의 여인 품에 안겨있는 자세이지만, 여인이 마치 남자를 흡혈하는 것과 같은 그림이다. 사랑을 하면 상대에게 내 취약한 부분을 뺏기게 되는 것 아닐까?
사랑은 정말로 인간을 강하게 할까? 나는 사랑은 인간을 오히려 약하게 만들면 약하게 만들었지 강하게 만들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실 사람의 특성마다 사랑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누구가는 정말 사랑을 하면 강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인간 표본인 나만큼은 사랑을 하면 더욱 약해지는 것 같다. 난 사랑을 하는 동시에 내가 가지고 있는 부족함을 극대화해서 보게 되는 것 같다. 또한 누군가를 사랑하면 우울감이 동반되는 것 같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을 갖고 싶다는 욕구가 따라오게 되는데, 내가 그 사람을 실제로 가질 수 없다면 욕망과 현실의 괴리속에서 우울함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2024. 2월 16일 나.
The embrace, Egon Schiele, 1917
지금의 나는 사랑이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사랑에 빠지고나서 사랑 만능주의자가 되었다는 말을 들어도 할 말 없다. 사랑이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드는 이유는 모순적이게도 사랑이 우리를 유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강함'을 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취약함에 대해서 되돌아 볼 시간을 갖기 힘들다. 취약한 점에 대해 인지하고 있더라도 애써 강한척 구멍을 감추려고 하고, 구멍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자책한다. 자책하고, 감추고, 아닌 척 하는 동안 우리의 취약함은 더 곪아간다. 하지마 사랑에 빠지게 되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취약함과 맞닥뜨리게 된다. 취약함을 직면하는건 고통스럽다. 이 고통은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어지고 사랑을 원망하면서 사랑에서 도망치고 싶게 만든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강력한 마법은 우리를 쉽게 도망치게 하지 않는다. 힘들더라도, 계속 스스로를 사랑에 집어 넣게 만든다. 이 단계에서 벗어나지 않고 견디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 각자의 취약함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를 배우게 된다. 꼭 사랑의 결말이 동화책처럼 해피엔딩이 아니어도 된다. 그저 이 모든 과정을 견디고, 매 순간 스스로와의 대화를 하게 된다면 결국 사랑의 끝에서 우리는 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