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엔 아주 달달한 날이 있다. 바로, 사랑하는이에게 초콜렛을 선물하는 발렌타인 데이! 연인끼리 초콜릿이 아닌 다른 선물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발렌타인 데이'하면 초콜릿이 떠오르는건 당연하다. 우리는 왜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선물하게 됐을까?
아즈텍과 마야와 같은 중앙아메리카 고대 문화에서 초콜릿은 특별한 행사를 위해 귀족들에 의해 사용되었던 신성한 의식 음식이었다. 중앙아메리카를 식민지화 했던 스페인 침략자들이 초콜릿을 접하게 되었다. 스페인 침략자들은 초콜릿이 북아메리카에서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초콜릿이 '중요하고 신성한' 음식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렇게 스페인을 통해 초콜릿은 유럽 문화권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다만, 초콜릿이 원래 가졌던 '신성한 의식 음식'이라는 정체성은 잃어간채 말이다.
유럽권에 초콜릿이 알려지게 되면서 사람들이 초콜릿을 제조할 수 있는 원주민들을 '사랑의 치료사'라고 부르며 찾아가 초콜릿을 통해서 이성을 유혹하거나 성기능을 향상시키게 해달라며 요청하게 되는 웃긴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이 때문에 가톨릭에서 금지되기도 했다는 어이없는 기록도 있다. 원주민 여성들이 남성을 통제하기 위해 마법의 초콜릿 음료를 사용한 혐의로 심문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남아있는데, 이는 원래 초콜릿의 제조를 담당한 성별이 여성이었던 원주민들이 억울하게 심문을 당한 사례이다. 이는 웃기고 억울한 이야기이지만 달달한 초콜릿의 맛이 이성의 마음을 얻을만큼 강렬했고 신비로웠다는 점을 알려주는 이야기이기도하다.
초반에는 유럽에서도 원주민들처럼 음료를 정확히 만드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최대한 원주민들이 만들었던 맛을 재현하려고 노력했고 점차 음료뿐만 아니라 사탕형태로 초콜릿을 제작하게 되었다. 이때 초콜릿은 원래 방식처럼 비싼 꿀과 향신료를 넣는 대신 설탕을 넣어 단맛을 내는 방식의 초콜릿이었다.
점차 제조사들은 초콜릿을 발렌타인 데이에 저렴한 선물로 홍보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발렌타인데이에는 '초콜릿'으로 마음을 표현한다는 문화가 자리잡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