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겪는 사람들'에 대해 다뤘던 첫 번째 이야기에 이어 중경삼림의 두 번째 이야기는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에 대해 다룬다.
이것저것 다양한 음식을 파는 사촌의 가게에서 일하고 있던 페이는 가게가 위치한 구역을 담당하고 있던 경찰 633, 양조위에게 빠지게 된다. 양조위가 가게에 들리기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위치의 페이는 어느 날 양조위가 여자친구와 이별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항상 가게에 들려서 여자친구와 함께 먹을 음식을 샀던 양조위. 어느 날 이별의 소식을 정한다.
양조위의 전여자친구가 가게에 들려서 양조위에게 전해달라며 편지를 전해주게 되고, 페이는 그 편지 안에 들어있던 양조위 집의 열쇠를 가지고 양조위의 집에 마구 들어가 이것저것 건드리게 된다.
남의 집에 무단침입하는 페이의 행동에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는 말을 들었다. 이해가가는 평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양조위의 집에 마구 들어가서 캔의 라벨을 바꾸고, 슬리퍼의 색깔을 바꾸고 침대에서 전여자친구의 머리카라글 찾아 샅샅이 정리해버리는 페이가 귀엽게만 보이기는 힘든건 사실이다.
하지만 양조위의 집을 양조위의 마음이라는 은유로 바라보게 된다면 페이가 사랑에 빠진 귀염둥이로 보이게 될 것이다. 양조위의 마음에 어느새 들어가서, 전에 있던 흔적들을 바꾸고 치워버린다. 자신이 빠지게 된 상대의 마음에 들어가 그의 마음을 마구 뒤집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물을 틀어놓고 나와버리는 바람에 자신의 방문에 대한 흔적도 남겨버리는데, 그전까지 조금씩 바뀌고 있던 집을 눈치채지 못했던 양조위는 이 사건 이후로 페이를 의식하게 된다.
얼마나 귀여운 은유인가! 사람의 마음을 집으로 표현한, 너무나 노골적인 은유이지만 사랑에 빠진 페이를 보고 있으면 이 유치한 은유마저 사랑스럽게 보인다.
몬스타엑스의 노래 가사가 들리는듯하다.
Knock knock 자 들어갑니다 너 완전 심쿵할게 분명합니다
여자친구가 즐겨듣던 CD가 바뀐지도 모르는 양조위가 귀여웠던 장면이었다.
페이를 의식하게 된 순간부터 이별에 슬퍼하던 양조위는 점차 사라지고, 집 안의 물건들에 웃으며 말을 거는 양조위가 나타난다. 양조위의 마음의 방을 채우고있던 전 여자친구에 대한 기억과 실연의 아픔은 어느덧 정리되고, 그의 방은 새로운 음악, "페이"로 가득차게 된다.
자신의 마음에 페이가 들어오게 된 것을 자각한 양조위는 페이에게 저녁을 함께 먹자며 데이트 신청을 한다. "캘리포니아"라는 식당에서 만나자고 페이와 약속한 양조위는 약속시간이 다 되도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페이를 계속 기다리다, 결국 페이가 미국의 캘리포니아로 가버렸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페이의 선택에 오랜시간동안 의문이 있었다. 자신이 사랑에 빠진 대상이 데이트 신청을 했고, 그 데이트 신청에 떨려하며 약속시간이 다가오기 전까지 들뜬 마음으로 일을 하던 페이는 어떤 마음으로 캘리포니아로 날아가버린것일까? 영화 속에서 엉뚱하게 비춰지는 페이가 혹시 캘리포니아와 레스토랑 캘리포니아를 헷갈려한건 아닐까?라는 생각은 페이의 독백에서 사라지게 된다. 페이는 레스토랑 캘리포니아에 약속시간보다 더 빨리 도착해있었다. 그러나 문득 또 다른 캘리포니아의 날씨가 궁금해져서 일 년 동안 캘리포니아로 떠나길 결심한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페이의 독백을 들어도 도저히 페이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주인공 토토에게 알프레도가 해줬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옛날에 공주를 사랑한 병사가 있었어. 공주는 병사에게 '내 방 창문 아래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100일 동안 서 있는다면 당신과 결혼하겠어요.'라고 말했지. 청년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공주의 창문 아래를 지키고 서있었단다. 하지만 99일째 되는날 병사는 그 자리를 떠나버렸어."
나는 병사가 자리를 떠나버린 이유가 두려움이었다고 생각한다. 더 나은 선택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말이다.
이렇게 중경삼림 두 번째 이야기는 페이의 캘리포니아행 선택을 통해 사랑에 직면한 사람들의 두려움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내가 빠져버린 사람이지만 막상 이 사람과의 관계에 진전이 보이기 시작하면 정말 이 사람이 내 최선의 선택인가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이 갖게되는 알량한 마음인 것 같다 .
양조위는 캘리포니아로 날아가버린 페이를 기다리며 페이의 사촌의 가게를 사서 운영하게 된다. 그리고 페이가 떠나기 전 양조위에게 남겼던 편지에 그렸던 비행기표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양조위는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아니 어쩌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는 페이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에 빠진 우리는 상대를 기한없이 기다리게 된다. 때로는 희망에 때로는 슬픔에 잠기며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기분을 느끼며 상대를 기다리게 된다. 이 기다림이 끝나게 된다면 사랑도 끝나게 되는 것이다.
양조위가 보관하고 있던 젖어버린 비행기표 그림은 사랑의 기다림이라는 속성을 보여준다.
일 년 뒤 재회하게 된 왕페이와 양조위
페이를 만났던 가게에서, 페이를 기다리고 있었던 양조위와 페이는 일 년 뒤 재회하게 된다. 첫 만남에서 가게를 지키고 있었던 페이와 가게에 들렸던 양조위의 상황이 전복되어있다.
둘의 사랑에서 기다림은 두려움을 이겼다. 두려움을 이기고 양조위의 마음을 다시 방문한 페이와 기한없는 기다림을 이기고 페이와 관계를 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얻은 양조위. 영화는 둘의 만남을 끝으로 밝은 노래 "몽중인"과 함께 막을 내린다. 첫 번째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난 중경삼림의 두 번째 이야기 또한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한다. 이 발랄하고 귀여운 두 번째 이야기는 첫 번째 이야기 보다 더 꽉꽉 막힌 해피엔딩인 것 같다.
두려움과 기다림을 이긴 둘의 사랑이 사랑의 유통기한이 만년이 될 수 있다는 걸 하지무에게 보여주는 사랑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중경삼림의 두 이야기들을 보며, 왕가위 감독의 사랑에 대한 시선은 '그럼에도 여전히'라는 단어로 정리할 수 있다고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쓸쓸하지만 복작거리는 홍콩에서, 또 우리 개개인의 인생에서 캔에 꾹 눌러 담아 보관할 수 있는 사랑이 운명처럼 다가오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운명처럼 다가오게 될 수 있다고 믿고 살아가고 싶다.
나에게 영화 자체로서도, 그리고 영화 외적으로도 많은 좋은 추억들을 만들어 준 중경삼림에 대한 내 사랑도 유통기한 없는 통조림 캔에 담아 보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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