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2023년도가 영화로 제작되었으면 하는 욕심을 담아, 달마다 내가 봤던 영화 중 가장 그 달을 잘 표현한 2023년을 영화 제목으로 표현한다면? - 상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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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누군가 영화로 제작해줬으면 좋겠다는 자의식 넘치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렇다고 내 인생을 담은 영화가 로튼 토마토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왓챠에 5.0의 평가가 넘치는 영화가 될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나 스스로 내 하루하루를 기록하며 정리하고 반성해야하는 걸 귀찮아 하기 때문에 누군가 대신 해주길 바라는 마음 때문에 내 인생이 영화로 제작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을뿐이다. 허허. 하지만 아직 개인 작가를 고용해서 내 2023년을 시나리오로 만들만큼의 재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2023년도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다. 다만 여전히 영화로 제작되었으면 하는 욕심을 버리기 힘드니, 달마다 내가 봤던 영화 중 가장 그 달을 잘 표현한 영화의 제목을 붙여보는걸로 욕망을 조금이라도 채워보겠다.
1월 🎬 비포 선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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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은 알군이 아직 한국에 있던 달이었다. 알군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몇 개의 영화들이 있다. 같이 봤던 홍콩 영화들부터 라라랜드 그리고 ”Before“ 시리즈이다. 비엔나 행 기차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담은 “Before” 시리즈 중 2023년 1월의 영화로 시리즈 중에서 두 번째 시리즈였던 “비포 선셋“을 고른 이유는 단순하다. 영화 속 주인동들이 비엔나에서 헤어진 후에 7년 만에 다시 파리에서 만났던것처럼 1월이 알군과 헤어진 뒤 반 년 만에 만나는 두 번째 만남의 달이었기 때문이다.
현재에 최대한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내 특성답게 12월과 1월 모두 알군이 1월 말에 떠난 다는 사실을 까먹고 행복하게 지냈다. 내가 알군이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그의 출국 일주일 전이었다. 평생 이런 일상이 계속 될 건 마냥 행복했던 나는 일주일 동안 밥 먹다 울고, 커피 마시다 울고, 농담 따먹다가 울고, 거실에서 같이 춤추다 울고, 같이 걷다가 울고, 웃다가 울다가 엉덩이에 뿔이 백만개쯤 난 채로 지냈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네 번째 만남이 성사 된 겨울의 나는, 그때의 슬픈 감정 마저도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난 슬픔이 없으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서사에 미친 사람이기에, 강렬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1월이 가슴 속에서 아름답게 미화 된 것 같다.
2월- 🎬 본즈 앤 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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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즈 앤 올은 식인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식인종들에 대한 이야기다. 판타지적인 요소라기 보다는 식인이라는 행위 때문에 숨어 살아야 하는 사람, 아니 사람이라기 보다는 어떤 존재들의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이 아주 잠깐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장면이 있었다. 그저 평범한 인간 커플들처럼 일상을 살아가며 단촐하지만 행복한 하루들을 보내는 짧은 시퀀스가 있었는데, 2월 달에 영화 OST를 들으며 그 장면을 많이 떨 올렸던 것 같다. 영화 속 아주 짧은 행복한 시퀀스마냥 행복했던 1월이 영원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슬픔을 가지고 이 월을 보냈던 것 같다. 아니 사실 2월, 3월, 4월 …알군을 다시 만나기 전까지 계속해서 슬퍼하며 보냈던 것 같지만 아무래도 이 월 나에게 가장 힘들었던 달이였던 것 같다.
3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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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누구나 최악이 된다‘의 원래 영어 제목은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이다. 누가 영어 제목을 번역 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번역 된 한국 제목 때문에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라는 기대를 잔뜩 안고 영화관에 갔다가 기대한 바와 다르게 흘러가는 이야기 때문에 실망하고 나왔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영화를 보고 난 뒤 계속해서 영화가 일상 속에서 생각났다. 한 곳에 정착 하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어떤 건지도 잘 알지 못하는 율리에 캐릭터가 너무나 나같았다. 3월은 그런 율리에게 대체 뭘 원하는 거냐고 물었던 그녀의 전 남자친구의 대사가 계속해서 내 머리에 맴도는 달이었다.
4월-🎬 매직 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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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 마이크는 스트립쇼를 하는 남성들의 이야기다. 여자 친구들과 함께 걸스 나잇을 가질 때 보면 모두 재밌게 볼만한 작품이다. 4월의 키워드가 쌩뚱맞게 매직 마이크인 이유는, 내가 몸 만드는 것에 아주 집중 했던 달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2023년 봄에 열심히 운동했던 이유는, 여름에 남자 친구를 만나기 때문이었다 아주 단순하고 속물적인 이유다. 이 속세적인 욕망을 내 입으로 꺼내기 너무 쪽팔렸기 때문에, 나는 대외적으로 건강이라는 타이틀을 내 세우고 열심히 운동하고 탄수화물과 당을절제하며, ‘그놈의 복근’과 ‘그놈의 엉덩이’를 위해 열심히 운동 했다. 하지만 계기가 어떻게 됐든, 나는 내 봄이 만족스러웠다. 단순히 외형이 더 가꿔져서 오는 자신감이 아니라 운동을 스스로 세운 목표치만큼 했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게 자신감을 주고 일상을 활기차게 보낼 수 있게 해줬던 것 같다. 이때 즐겨 먹었던 음식은 그릭요거트, 병아리콩 그리고 닭가슴살괴 시금치였다. 올해 가을에 공부에 집중 한다는 핑계로 마구마구 먹어댔기 때문에, 아마 내년 봄도 여름을 준비하며 2023년 봄처럼 보낼 것 같다. 하하. 겨울 동안 요리 실력을 조금 늘려서 새로운 식단 조절용 레시피를 만들어 봐야겠다.
5월-🎬 썸머필름을 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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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를 바꾸고, 미술사 대학원 준비와 학기를 본격적으로 병행하기 시작했던 달이었다. 나름 널널한 막학기였기 때문에, 학기를 여유롭게 보낼 수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도 자주 만나고 카페에서 여유롭게 미술사 공부를 하는 사치도 부릴 수 있었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시간 여행을 하는 것 같은 체험을 안겨주는 미술사 공부를 할 때, 큰 행복감을 느꼈던것같다.
진로를 바꾸기로 결정한 뒤부터, 내가 외면해왔던 욕망을 직면할 수 있었고, 그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것에 대해 괜한 부끄러움을 느끼는 일도 덜해진 것 같다. 내가 외면해왔던 욕망이라하면 바로 예술의 언저리에라도 머물고 싶은 욕망이었다. 직접적으로 창작자가 될 배포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평론가나 예술관련 경영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마음 한 켠에 담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항상 그 욕망을 숨기려고 했었던 것 같다.
미술사 공부를 하면서 내가 원했던 것이 이것이었다는 생각과 이 공부라면 어려워도 평생 행복하게 즐기면서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벅찼다. 그 벅참이 너무 감사했다. 영화에 대한 귀엽고 순수한 열정이 담겨있었던 썸머 필름을 타고의 주인공이 된 것마냥 미술사에 발걸음을 떼면서 행복했던 5월이었다!
6월 - 🎬 냉정과 열정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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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셋째주, 마지막 학기를 끝내자마자 알군을 만나러 이탈리아로 갔다. 기대하고 기대했던 공항에서의 재회가 아주 살짝은 어색했던 기억이 난다. 나를 배웅 온다고 면도하고 왔던 알군의 부드러운 볼의 촉감과 어두웠던 트리에스테 공항과 나 혼자 동양인이었던 비행기 안에서의 이질감 모두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글을 쓰다가, 1월부터 6월까지 대부분 알군에 대한 내 감정이 계속 영화 키워드를 정하는데 중심이 되었다는걸 깨달았다. 그만큼이나 알군은 나의 일상에 큰 존재인것 같다. 그렇기에 비록 첫사랑이 아니지만 첫사랑이라는 풋풋하고 아름다운 단어를 알군에게 헌정하고 싶다.
알군과의 꿈 같았던 여름의 첫번째 달 6월은, 행복하면서도 계속해서 “그럼 다음 만남음 언제, 어디서, 아니 다음 만남이 혹시 불가능하진 않겠지?”라는 불안한 마음이 공존했던 달이었다. 그렇기에 첫사랑과의 재회가 담긴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로 6월을 표현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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